괴물 怪物 (2023) ★★★★★

2023. 12. 6. 13:24

분명히 어린아이가 비중 있게 나오는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글을 썼던 거 같은데 별 다섯 개 영화에 아이들 나오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. 바로 어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<괴물> 을 보고 왔다. 보면서 말도 안 되는 굴곡의 감정 변화를 겪었고,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이상하게 점점 더 벅차오르더니 극장을 나오면서는 꽤 오랜만에 고민 없이 별 다섯 개를 눌렀다. 물론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대충 수치화하면 1.5배 정도의 감정을 배가시키는 효과가 있다. 하지만 올해의 영화가 될 거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.

 

상가에서 커다란 화재가 발생한다. 걸스바 - 아마 유흥업소인 모양이다 - 가 있다는 건물의 고층이 활활 타오르고, 그 모습을 미나토와 그의 엄마 사오리가 구경한다. 미나토는 사오리에게 만약 돼지의 뇌를 인간에게 이식한다면, 그 사람은 인간인지 돼지인지에 대해 묻는다. 질문이 마치 경고였던 것처럼 미나토의 기이한 행동들이 시작되고, 몸에 알 수 없는 상처들도 생겨난다. 사오리는 미나토의 담임 호리가 미나토를 학대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. 나는 이 이야기를 이 이상 소개하고 싶지 않다.

 

꽤 많은 이들이 전개 방식에서 <라쇼몽> 을 언급하지만 개인적으론 <쓰리 빌보드> 가 생각났다. 이 거대한 우주 자그마한 지구 그 속에 정말이지 좁쌀만 한 사회 속에서도 인간들의 관계란 마치 우주의 원리라도 담아낸 듯 복잡하기만 하다. 결국 모두의 행동은 하루라도 더 올바르게, 더 좋게 살아보기 위한 한 순간의 몸부림이다. 또한 정말 당연하게도 구조적이든, 그냥 천성이 그러든 어떤 이유들로 그런 몸부림조차 포기한 인간들도 있다. 그렇게 서로 선한 에너지도 주고받고, 부정적인 것들도 주고받으며 엉망진창으로 서로를 죽이고 살리고 웃고 울리는 게 이 작고 작은 세계의 매일매일이다. 물리적 폭력보다도 오해가 무섭고, 오해만큼이나 물리적 폭력도 무섭고, 아니 그러면 뭐 이거는 서로 왜 이렇게 연약한가 싶을 정도로 허술하게 짜인 게 우리들이다. 그 웨하스 마냥 얄팍한 것들이 켜켜이 나름 버티겠다고 쌓여있는 가슴에 돌멩이 하나가 파삭 날아온 듯한 기분에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.

 

영화에는 명백한 '범인'들이 존재하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범인들을 공개적으로 끌어내리고 욕하는 데 포커스를 옮기지 않는다. 아니 애초에 범인이란 존재들을 모두가 볼 수 있게 꺼내놓았는지도 확실하지 않다. 언제나 핵심은 그런 평화를 가장한 혼란 속에서 피어나는 것들에 있다. 과일 밭을 매일같이 두들겨 패다시피 농약을 뿌리고 영양제를 꽂아놓은들 벌레먹은 열매는 생기고 잘 안 자라는 열매들도 있게 마련이다. 그러나 그건 그 이후에 내려지는 평가일 뿐이다. 결국 모든 줄기는 무언가를 피워내기 위해 매일같이 살아가고 무언가를 끝내 피워낸다. 잠깐 평가를 멈추고 세상을 바라볼 때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. <괴물> 은 그런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영화다.

 

무언가 믿고 사는 게 무언가 믿지 않고 사는 것보다 편하다. 게임 공략집처럼 내가 믿는 것들을 마음 속 몇 장 짜리 노트에 빼곡히 적어두고 살면 위기가 닥쳐도 눈 감고 귀 막고 넘어가면 그만이다. 하지만 세상은 정말로 집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마주할 수 있다. 지금 문을 열자마자 맡은 이 공기가 찬 공기인지 더운 공기인지, 비가 와서 습기를 조금 머금은 공기인지 혹은 며칠째 건조하고 먼지가 많아 열자마자 목이 칼칼해지는 공기인지 어쩌는지. 그 문을 열자마자 느낀 첫 감상부터가 다시금 시작되는 오늘의 세상의 시작이다. 나, 나와 인터넷, 나와 인터넷과 알고리즘, 나와 가족들, 나와 친구들... 그 모두를 잠시나마 버리고 세상을 정말로 바라볼 수 있을까. 믿는 것들만 받아먹으며 집채만 한 아집으로 몸집을 불린 거대한 괴물이 될 것인가, 혹은 모두에게 어쩜 이렇게 사람이 가진 연을 다 무시하고 비정할 수 있느냐며 괴물 취급을 받을 것인가. 우리 모두는 그 언저리에서 매일같이 나를 이리저리 바꾸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. 어쩌면 그런 비겁한 존재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걸지도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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