일주일 One Week (1920) ★★★★★
찰리 채플린을 좋아하게 되면, 자연스럽게 버스터 키튼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. 그리고 대개 차가운 심장을 가진 영화 팬들은 버스터 키튼 쪽에 더 마음이 가게 된다. 첫째로 그의 영화가 좀 더 시네마틱한 테크닉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고, 둘째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표정으로 반응하지 않는 '위대한 무표정' 이라는 컨셉이 굉장히 멋지게 다가오기 때문이고, 셋째로 키튼은 채플린보다도 심하게 커리어를 빠르게 망치고 말년이 꼬였던 편이기 때문이다. 나 역시 그렇다. 자연스레 신파를 조금 섞어 감성에 호소하는 채플린의 영화보다 쿨한 로맨티스트에 가까운 키튼을 좋아하게 됐던 것 같다.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는 둘을 거의 비슷하게 좋아하게 됐지만.
버스터 키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. 이 사람은 사랑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단순한 진리로 영화를 몇 편을 찍었고, 그걸 증명하기 위해 카메라와 로케이션, 세트를 활용한 구조적으로 탄탄한 공간 속에서 온 몸으로 스턴트를 통해 구르고 달리고 뛰고 넘어지며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싸운다. 그것이 백 년이 넘게 지난 흑백 영화임에도 볼 때마다 설레게 하는 버스터 키튼 영화의 값어치다. 채플린이 온갖 꼼수와 잔머리로 사랑을 쟁취할 때, 키튼은 대충 각을 재고 말도 안 되는 피지컬로 부딪히고 본다. 어쩌면 슬랩스틱이란 범주에 키튼을 가두기엔 너무 아까울 지도 모른다. 성룡은 항상 키튼을 제일 존경하는 감독으로 꼽는다. 둘이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. 그야말로 육체와 상처의 예술이다.
<일주일> 역시 플롯은 단순하다. 아니, 마냥 단순하진 않다. 결혼을 갓 한 신혼 부부는 운전 기사로 온, 신랑을 질투하고 신부를 뺏고 싶어하는 동네 건달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. 어찌저찌 그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려 다른 차를 타고 삼촌이 선물해 준 집에 왔더니 아뿔싸 판자들만 가득하다. 그렇다. 이 집은 직접 짓는 조립식 집이다. 잘 지어지나 싶다가도 서투른 신혼 부부에겐 쉽지 않은 작업이다. 그 때 건달이 판자가 든 박스의 숫자를 바꿔놓고, 집은 점점 이상한 모습으로 완성되기 시작한다.
이 영화가 눈물나게 사랑스러운 점은 물론 키튼의 내 마음을 쏙 뺏어가는 비주얼과, 영화 내내 이를 악물고 찍어낸 듯한 스턴트 코미디 시퀀스들 - 이 영화는 키튼이 단독 주연으로 만든 첫 단편이다 - 도 있겠지만, 무엇보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떨어진 키튼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한 번 까딱,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일을 하러 갈 때 아내와 꼭 가벼운 키스를 하고 간다는 점이다. 단순한 러닝 조크로 치부하기에 지나치게 로맨틱한 그 순간들이 이 영화를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 영화로 만들어준다. 사랑하는 여인의 포옹과 키스라면 키튼에게 해내지 못 할 일은 없다.
2층에서 떨어져도, 집이 박살이 나도, 아내가 키스를 해줘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키튼이지만 그의 무표정 속에 담긴 것들을 읽어내는 건 강렬한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것만큼이나 쉽다. 게다가 영화적 테크닉도 일찍이 정점에 도달한 키튼이라, 영화라는 매체를 완벽히 이해한 자가 구사할 수 있는 놀라운 유머가 중간에 등장한다. 흑백에 무성영화라는 요즘 세대엔 쥐약인 세팅인데도, 20분이라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.
재기발랄함과, 그 재기발랄함을 현실에 옮길 수 있는 버스터 키튼이라는 위인의 천재적인 몸놀림이 가득 담긴 단편 <일주일>. 유튜브에 검색하면 한글 자막까지 달린 채 업로드가 되어있다. 하단에 첨부한다. 퍼블릭 도메인이기 때문에, 혹여 키튼이 저작권 손해를 보진 않을까 고민 없이 봐도 된다. 보고 나면 키튼을 좋아하게 되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. 어디에서 뛰어내려도 사뿐하게 착지하는 멋지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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